고통
6.25 전쟁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총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포탄은 애초에 운에 달린 거지만, 서로가 괴성을 지르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백병전만큼은 정말로 끔찍하게 싫었다고 한다. 맞서싸울 때는 광란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전투가 끝난 다음에는 자신이 찔렀던 적군의 비명과 살려달라고 빌던 소년을 죽인 것이 생생하게 떠올라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정신적 문제가 생기거나, 반응속도 등이 떨어져 자살성 행동을 하다 죽은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아무런 심리적 대비 없이 눈빛과 표정이 멀쩡히 살아움직이는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하는 쪽에서도 충격이 매우 크다. 군사심리학적으로 사람은 자신을 명백히 노리는 위협에 더 크게 겁을 먹는다. 저 멀리 떨어지는 포탄이나 허공에 울리는 기관총 화망도 맞으면 사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위험하지만, “재수없게” 맞는 거라고 위안이라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리를 노리고 꽂히는 저격, 코 앞에 들이닥친 적이 거는 백병전은 확실히 나를 집요하게 노리는 공격이기 때문에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냉병기와 격투기를 동원한 전통적인 백병전도 백병전이지만, 포병과 미사일 전력이 설치는 현대 기준으로는 사람 대 사람으로 근거리에서 총질하는 상황 자체가 백병전이나 다름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내 앞에 벽이 무너지고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초록 눈깔 4개가 번뜩이는 떡대들이 순식간에 난입해 듣도 보도 못 한 정갈한 사격술로 옆의 동료들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는걸 보면 보통 사람은 지릴 수 밖에 없다.
전쟁이 다 그렇지만, 근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죽인다는 점 때문에 양쪽 다 피폐해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이 때문에 근대 이후로 실제 전장에서 돌격 후 접근에 성공했더라도 실제 백병전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보통은 돌격을 당한 쪽의 사기가 떨어져 도망치거나 항복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전근대에도 백병전 사상자의 절대다수는 패주와 추격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극소수의 사이코패스나 경험도 많고 훈련도 잘 된 정예부대가 아닌 이상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마셜 준장의 “오직 15%의 병사들만이 교전 가능 사거리에서 총을 쏘았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